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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전시] 엘름그린 & 드라그셋 전시 관람후기 @용산 아모레퍼시픽

초이스초이스 2024. 10. 25. 19:06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홈페이지

일정 2024.09.03~ 2024.02.23까지
예약 필수
운영시간 : 매일 10:00 ~ 18 :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서울전시] 관람 전 알쓸잡식 _엘름그린 & 드라그셋 (용산 아모레퍼시픽: Spaces)

용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APMA에서는 《Elmgreen & Dragset: Spaces》 전을 개최 중이다. 이번 전시는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한국 내 첫 전시이며, 실제 규모의 집, 수영장, 레스토랑 등의 대규모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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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한 채를 만들어 넣자고
미술관에 제안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예술가 듀오 엘름그린과 드라그셋. 그동안 국내에서 몇 번의 전시가 열렸었지만 이번만큼 큰 규모의 전시는 처음이다.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은 광활한 규모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을 본 순간 "아예 실제 집을 한 채 만들어서 넣자"라고 미술관에 제안했고, 아모레퍼시픽은 그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운이 좋게도 그들이 만든 실제 집을 국내에서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내년 2월까지의 전시라 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만,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 동료들과 함께 머리도 식힐 겸 전시를 보러 나섰다. 추상적으로 어렵게 표현하기 보다는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그들이기에 어렵게 다가오지 않아 더 좋았던 전시. 관람을 예정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들이 숨겨놓은 서사와 곳곳의 미니어처 작품들을 찾으며 탐정이 된 듯 추리해보길. 기억에 서 휘발되기 전 감상평을 얼른 담아본다. 


무엇이 남았는가? (WHAT'S LEFT?, 2021) 
소셜 미디어 (SOCIAL MEDIA, 2022)
DONATIONS

 
아모레퍼시픽 1층 APMA에 입장하게 되면 가장 처음 마주하게 되는 DONATIONS 박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돈만 들어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돈은 별로 없다. 한낯 하찮은 듯한 동전, 1달러, 천원짜리 지폐 위로 더 수북이 쌓여 있는 건 신발, 먹다 남은 소화제, 면봉, 심지어 쪽쪽이까지. 왠지 낯설지 않은 불편한 이 광경. 우리는 진정으로 "기부"하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기부함에 돈을 기부한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을까 생각해보게된다. 단지 주머니를 비워내기 위해 내겐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을 던지는 "허울 좋은 쓰레기통"으로 이용하지 않았던가. 분명 그런 적이 많았던 나다.
 
그 옆에는 끊임없이 뱅글뱅글 도는 원판 위에 강아지 한마리가 앉아있다. 작품명은 소셜미디어.  SNS 알고리즘에 빠져 끝도 없이 반복되는 무의미한 피드들. 거부할 수 없는 피드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도 모르게 허비하고 있는 셀 수 없는 시간들. 부끄럽고 불편하지만 빙글빙글 돌아가는 강아지의 모습 또한 나다.
 


그림자의 집 (SHADOW HOUSE, 2024)

 
지하 전시관으로 입장하게 되면 제대로 지어진 단독 주택 "그림자의 집"을 만날 수 있다. 심지어 거실, 주방, 침실, 화장실까지 갖춘 완전한 규모의 집이다. 집의 각 공간에서는 가상의 거주자에 대한 단서를 추리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 그곳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정체성이 묻어나는 물건들을 보며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어떤 메시지가 전하고 싶은 지 추리하고 탐구하는 것은 오롯이 우리 몫이다. 혹은 추리가 귀찮은 관람객일지라도 극적일만큼 디테일한 수준의 작품을 보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흥미로울 전시이다.

더하여, 가족관계와 일상 생활의 중심이 되는 집이라는 영역은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공간 작업 안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자 반복적으로 다뤄온 소재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더 좋았던 점은 그림자의 집 안에서 나오는 라디오 소리, 적혀있는 글자, 책자 등 많은 소품들이 한국어로 되어 있어 더 현실감 있게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림자의 집, 2024

 


생명의 나무 (TREE OF LIFE,2024)

 
지하에 있는 전시공간에 처음 입장하게 되면 집만큼이나 존재감 있는 독수리 한 마리가 있다. 앙상한 나무 위에 앉아 집 안을 째려보듯 응시하고 모습이다. 이 독수리는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의 2012년부터 모든 전시에 등장해왔다고 한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듯한 독수리의 구부린 자세와 매서운 눈빛이 몹시도 거슬린다.
 
우리네 삶 속에도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며 낚아채려는 이런 독수리같은 존재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이는 독수리가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심지어 벽에 비친 독수리의 그림자는 나무 위의 독수리와 달라 섬뜩하다.


나, 2023

 
거실 창문에 서서 안개 낀 창문에 “I ”를 쓰고 있는 소년이 있다. 아마도 초등학교 6학년쯤 되려나... 아이는 여기에 서서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알파벳 I는 나를 뜻하는 I일까 아니면 글자가 아닌 그림을 그리려는 걸까. 거실 한 켠의 서랍장에는 엄마와 아이가 찍힌 액자가 놓여있다. 벚꽃이 만발한 걸 보니 어느 봄, 한국 어딘가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인 듯하다. 상당히 쾌활해 보이는 엄마와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아이.
 
이 가족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창문에 서 있는 아이는 단지 이 순간 무료한 것뿐일까? 아니면 혹시 엄마는 어디론가 떠나버린 건가, 그래서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며 I miss my mom을 쓰는 건가…. 나무랄데없이 멋지고 고급스럽기 그지없는 이 멋진 집이 한없이 쓸쓸해 보이는 건 순전히 내 기분 탓인가. 


더클라우드 (THE CLOUD, 20204) / 멋지게 차려입다, 2022

 
더 클라우드라는 이름을 가진 레스토랑이 있다. 이곳은 세계 각지에서 볼 수 있는 파인다이닝의 요소들을 재연해놓았다. 레스토랑의 입구 고급진 소파 위엔 토끼옷을 입은 여자가 널브러져 있다. 왜 하필 여기에 토끼옷을 입고 누워있는 걸까. 흔들어 깨워서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술이라도 거하게 걸친 듯 너무 깊이 잠든 모습이다. 그리고 레스토랑 저편엔 남자친구와 쉴 새 없이 영상통화하는 여성이 앉아있다.

5성급 호텔에서나 볼 법한 이 레스토랑에 다른 방식으로 와 있는 두 사람. 그들은 어떤 목적으로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아무 상관없다는 듯 세상을 차단해버린 한 사람과 한 손엔 폰을 쥐고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려는 한 사람의 모습이 한없이 대조적으로 다가온다.
 

레스토랑에 전시되어 있는 '고흐의 귀' 욕조

 


 주방, 2024 / 팀워크 2023-2024

 
레스토랑을 지나 중앙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실험실인지 주방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주방이 나온다. 똑같은 모습을 한 두 여성이 무언가를 열심히 실험 중이다. 우리가 먹는 식재료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보기 좋고 맛있고 그럴듯하면 좋겠는데 기다릴 시간조차 없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결국 갖은 실험 끝에 만들어지는 ‘유기농이길 바라는’ 화학 물질이 아닐까. 모순 덩어리로 뒤엉킨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당신은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최고급 분위기와 최고급 음식"을 즐기는 것을 인스타그램에 피드를 올린다. 응당한 댓가를 치룬만큼 온 쉐프들이 내 음식에 혼을 쏟아부어 만들어주길 바라겠지만, 셰프들겐 이곳이 어쩌면 끝없는 스트레스에 파묻혀 담배라도 피워야만 견딜 수 있는 한낮 힘겨운 일터뿐일지도 모른다. 
 

 


 

자유롭게 탐구하고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혼란스럽기를 바란다.

   
(엘름그린과 잉가 드라그셋의 스페이스전 인터뷰 )
출처 : 더블유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