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우리의 미식기준을 상향평준화한 흑백요리사 (feat. 미슐랭가이드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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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음식에서 찾은 호기심

우리의 미식기준을 상향평준화한 흑백요리사 (feat. 미슐랭가이드의 시작)

전 국민의 미식기준 상향평준화를 이끌어낸 대세 프로그램 흑백요리사가 드디어 종영했다. 난 아직도 8편에 머무르고 있지만, 아무리 귀를 닫고 눈을 감아도 들리는 우승자의 이름... 대세를 못 따라가고 뒤늦게 합류한 내 탓이지 누굴 탓하랴. 여하튼 흑백요리사 덕에 내내 오르내렸던 미슐랭 가이드( Michelin Guide )는 이제 남녀노소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대체 불가한 미식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다들 알다시피 미쉐린 가이드를 발간한 곳은 프랑스의 타이어 회사 미쉐린(michelin)이다. 기업가치는 무려 240억 달러(약 31조 8960억 원)로 2023년 기준 세계 1위 (참고로 한국타이어는 7위)인 명실상부 최고의 타이어 회사이다.

우리가 아는 미쉐린 가이드는 프랑스어로는 기드 미슐랭(Guide Michelin)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프랑스어대로  '미슐랭가이드'로 지칭했으나 한국지사에서 사명을 미쉐린으로 정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공식명칭도 '미쉐린 가이드'로 결정되었다. 그럼에도 회사의 바람과 달리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타이어는 미쉐린, 식당 가이드는 미슐랭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지금 미쉐린이라고 쓰는 것이 매우 어색하니까. 


여행에 로망을 가진
예비 타이어 고객들을
노린 가이드북 

 

 
미쉐린 가이드도 처음부터 상징적인 미식 가이드였던 것은 아니다. 운전자가 도로 여행을 더 많이 하도록 도움이 되는 정보를 담아 빨간색 표지의 소책자로 발행한 것이 오늘날 대단한 명성을 떨치는 가이드북의 시초가 되었을 뿐.
 
창업자 앙드레 미쉐린과 에두아르 미쉐린 두 형제는 자동차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면 자동차 판매가 늘고, 그러면 타이어 판매도 함께 늘 거라고 예상하며, 작은 자동차 여행안내 책자를 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비전을 가진 형제가 아닐 수 없다. 안내 책자에는 지도와 타이어 교체 방법, 주유소 위치는 물론, 여행하다 쉴 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먹을 곳과 잘 곳의 목록 등 실용적인 정보를 가득 실었다.


우리가 만든 가이드북을
고작 작업대 받침으로
깔고 있다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들른 한 타이어가게에서 미쉐린 가이드북이 고작 작업대 받침으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미쉐린 가이드북은 20년동안 무료로 배포되었다.)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형제는 “사람들은 돈을 내고 산 물건만 가치를 인정한다”는 원칙을 깨닫고 1920년 완전히 새로운 미쉐린 가이드북을 발행, 7프랑에 판매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유료 판매로 전환한 미쉐린 가이드는 파리의 호텔 목록과 카테고리별 레스토랑 목록, 가이드북 안에 유료 광고를 싣지 않겠다는 내용을 최초로 담으며 미쉐린 가이드북의 영향력을 점차 키우게 된다.

현재 미쉐린 가이드는 전 세계 3 대륙, 30여 지역에서 레스토랑과 호텔 3만여 곳을 평가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3천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매년 업데이트되는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와 관련하여 업계의 의견이 갈리기도 하지만, 그 영향력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참고로, 미쉐린 형제가 타이어회사를 창립했을 때가 1889년이다. 그리고 위의 사진은 같은 해 프랑스에서 파리 엑스포를 기념해 에펠탑을 건립할 당시의 사진이다. 당시 프랑스의 전체 차 대수가 고작 3,000대 미만이었다고. 사진 속의 에펠탑 주변의 전경을 보면 그 시대의 상황이 충분히 가늠이 되고도 남는다. 자동차도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시대에  " 예비 타이어 고객을 늘리기 위해서 여행 책자를 만들어야겠다"는, 시대를 관통하는 비전을 제시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미쉐린은 현재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그들의 세계관을 여전히 확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