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개인적으로 목욕탕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꺼린다고 하는 게 낫겠다 _ 두 가지의 명확한 이유로
하나는 어깨에 불룩하게 솟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자라고 있는 커다란 켈로이드 주사자국. 어린 마음에 사람들이 내 어깨를 이상한 듯 쳐다보는 그 시선들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요즘 같으면 그렇게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할 텐데 예전엔 어떻게 그렇게들 두 눈 동그랗게 쳐다볼 수 있었을까.
여하튼, 두 번째 이유는 나의 고질병인 미주신경계 실신. 초등 시절 엄마와 함께 간 목욕탕에서 더운 공기에 숨이 막혀 혼절. 눈을 떠보니 평상에 맨몸으로 누워있는 나. 웅성웅성 걱정해주는 내 주변의 아주머니들이 기억난다. 그날 이후로 결혼 전까지 내가 목욕탕을 간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던 내가 다시 어찌하여 목욕탕에 가게 된 건,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되면서다. ‘시댁 = 목욕탕'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은 목욕탕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며느리인 내가 목욕탕을 끔찍이도 싫어한다는 사실은 알리 없으시니 시댁에 가면 부산의 명물에 꼭 가야한다 하시며 으레 허심청이라는 목욕탕에 나를 늘 데려가셨다. (드넓은 로마광장처럼 펼쳐지는 광대한 허심청의 첫 광경을 잊을 수 없다.
홀딱 벗은 채 야외광장에 뻘쭘하게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은 인생에 한번쯤은 겪어볼만한, 신선함과 수치스러움을 동반한 꽤 괜찮은 경험이 될지도. 허심청 추천이요.)
여하튼, 차마 "아니요~ 전 목욕탕 싫어요!"라고 할 수 없었던 새댁 시절을 애써 참고 몇번 다녀보니 '뭐, 이깟 목욕탕 다닐만하네'가 되었다. 이따금 아가들이 나의 버섯같은 불주사 자국을 두 눈 동그랗게 쳐다보는 시선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결코 날 경계하거나 무서워서가 아니라 울 아들이 어릴 적 그랬듯 _ 그저 궁금해서 보는 것이리라 애써 위안삼으며.
또한 온탕에만 오래 있지 않으면 실신할 염려가 없다는 것도 서서히 경험으로 터득했다. 의사말로는 아득해지는 느낌이 오면 그냥 철판 깔고 어디든 누워버리라고.
그렇게 나는 이젠 '목욕탕을 즐기지는 않지만, 그다지 싫어하지도 않는' 낯 두꺼운 아줌마가 되었다.
어느 나른한 오후의 사무실, 습관적으로 Pinterest를 켜고 소울리스하게 손가락이나 튕겨가며 이미지를 찾던 나. 조는 건지 일하는 건지 모를 미지의 영혼이 반짝 돌아오게 만드는 이미지를 발견했다. 그곳은 - 일본 도쿄에 있는 300평 남짓한 자그마한 센토,
고메유 공중목욕탕 (Komaeyu PublicBathhouse)
〒201-0014 Tokyo, Komae, Higashiizumi, 1-chōme−12−6 長谷kawabil
이토록 산뜻한 옥색의 타일과 샛노란 목욕바가지의 기막힌 조합이라니. 범상치 않은 이곳의 사진을 본 순간 습관처럼 설계사부터 찾아본다. 어쩐지 어쩐지. 일본 건축회사 '스케마타 아키텍처'의 '조 나가사카' 다. 일본의 모든 블루보틀 매장을 디자인한 건축가다. 이곳 고메유 공중목욕탕은 그가 사는 곳에서 도보로 30분에 있어 본인이 자주 가는 목욕탕이자 커뮤니티인 것처럼 즐겁게 상상하며 디자인을 했다고. 얼마나 신이 났을까 :)
번외로, 조 나가사카는 국내에서도 꽤 많은 곳을 디자인했는 데 블루보틀 삼청과 성수, 얼마 전 재개관한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이솝 제주등이 그의 작품이다.
TMI. 친한 동생이 일본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나가사카 조 아래에서 일하다가 그의 도제방식에 제대로 질려서 몇년전 아에 IT 쪽으로 전공을 바꿨다는... 쓸쓸한 비화가 생각난다.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키는 내 의식 속의 목욕탕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던 생맥주 카운터. 목욕 후 노곤노곤해진 몸을 닦고 나와 시원하게 들이키는 생맥주 한잔 _ 이토록 상쾌한 조합이라니. 역시 일본은 비루의 민족?!
일본의 대다수의 대욕탕이 그렇듯 이곳의 벽면에도 후지산이 그려져 있다. 다만 이곳의 다른 점은 후지산의 그림이 욕탕이 아닌 카운터 입구에 있다는 것과 페인팅이 아닌 직접 제작한 타일의 조합이라는 것. 그래서 여느 목욕탕들과는 다르게 도시적인 감성의 후지산 느낌을 풍긴다.
사진을 보며 궁금한 점이 또 하나 생겼다. 우리나라 목욕탕의 좌식 부스에는 보통 오른쪽 벽에 핸드샤워가 달려있는데, 이곳의 좌식 부스엔 핸드샤워는 없이 헤드샤워가 달려있다. 많이 불편할 것 같은데? 곧장 일본의 목욕탕 사진을 뒤지기 시작했으나 불충분. (나란 인간, 일은 대체 언제 하는가)
급기야 도서관에서 목욕탕 관련책을 검색, 운이 좋게도 [ 목욕탕 도감 ]이란 신간을 대여할 수 있었다. 책을 찾아보니 대부분의 목욕탕이 헤드샤워를 사용하고, 간혹 핸드샤워가 있는 경우는 사이 칸막이가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처음엔 헤드샤워를 쓰면 물이 더 튈텐데, 더 불편하지 않을까? 일본 사람들은 남에 대한 배려가 대단한 만큼 피해받는 것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인데 어찌 그럴까 생각했으나 이번에 교토 여행 중 대욕탕을 직접 가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헤드샤워로는 그 자리에서 고이 머리만 감고, 바가지에 조심스레 물을 받은 후 혹여라도 주변에 한 방울이라도 튈까 한없이 살살 끼얹던 교토 사람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어쩌면 교토여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곳 도쿄는 또 다른 모습일지도.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목욕탕이 하나쯤 있다면 참 좋겠다. 카페만큼 자주는 아니더라도, 목욕탕을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한 달에 한두번은 들르지 않을까. 어쩌면 뜨끈한 목욕물보다 시원한 맥주 한잔하고 싶어 한가게 되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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